요즘은 거리를 지나면서 김장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식당 앞에 산처럼 쌓인 배추들도 보게 되고 식구 적은 집의 몇 포기 안 되는 적은 양의 배추들도 보게 된다. 그 배추들 옆엔 머리 잘린 무들도 함께 있다. 무청 없이 몸통뿐인 무가 배추의 속이 되고 동치미가 되고 깍두기가 되기 위해 ..
서울을 가야해서 집을 나서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데 지리산종복원소 앞이 여간 번잡스럽지 않다. 외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를 세워놓고 이리저리 모였다 흩어지고 다시 모이면서 단풍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고 있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단풍이 유난히 더 예뻐서 그러겠지만 운전을 하는 사람에게는 조심스..
어머니가 대상포진으로 고생을 하시다 이기지 못하시고 결국 서울 병원으로 가시니 일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나를 배웅하면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하나 없어 쓸쓸하다. 이런 내 자신을 보면 나는 아직도 어머니로부터 완전하게 독립하지 못하고 사는 반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연암 박지원은 명문가의 집안에서 수재로 자라난 사람이다. 그러나 출세와 벼슬에는 관심이 없이 평생을 학자로서만 지내다가 오십이 넘어서야 생계를 위해 지금의 함양군 안의면 일대의 안의현감으로 몇 년간 일을 했었다. 연암은 현실에 깊은 회의를 가지고 두통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양반전, 광문자전,..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학교를 같이 다니지도 않았고 한 동네에 살지도 않았고 같이 일을 하지도 않았지만 몇몇 사람들과는 생각지도 않게 친해져 만나서 밥도 같이 먹고 일을 도모하기도 했고 함께 일을 하는 중이기도 하다. 또 어떤 이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알 수 없는 힘에 끌..
아침저녁으로 부는 찬바람이 솜털을 일으켜 세운다. 늘 그래왔듯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가을은 겨울이 벌써 턱 앞에 와있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제대로 난방을 해야 하는 기간이 6개월은 되는 곳이라 이쯤에는 김장 걱정, 메주 걱정, 난방 걱정, 겨울옷 걱정 따위로 통장의 잔고를 자꾸만 살피게 된다. 우리 ..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간식거리가 정말 없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그나마 가게에서 몇 가지 안 되는 과자라도 사먹을 수 있었지만 그 시절의 농촌 아이들은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따서 먹고 주워 먹고 그렇게 자랐다. 나도 동갑내기 외삼촌과 함께 그렇게 돌아다녔고 가을이면 더..
소시지를 처음 먹던 날을 기억한다. 나의 길지 않은 인생사에 햄이 들어온 날도 기억하나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던 날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의 첫 기억이 없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에 대한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통에 담아가지고 다니면서 팔던 아..
평탄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말로 인생의 매운맛을 모른다고들 한다. 달콤한 삶에 매운맛이 더해져야 제대로 어른이 되는 것인지 음식을 먹는 방법도 우리의 인생과 흡사한 것 같다. 어릴 때는 담담하고 달콤한 음식 위주로 먹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짜고 시고 매운맛을 즐기게 되니 말이다. 우..
1928년 발행된 잡지 <별건곤>에서는 가을에 먹는 풋김치에 대해 ‘고소한 품이 혀가 이 사이를 저절로 더듬으며 돌아다닐 만큼 맛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은 먹을거리들이 워낙 종류도 많고 귀한 것도 많고 멀리서 온 것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지만, 그래서 이른바 먹방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음식..
대도시에서 일본어 통역을 하던 김지영은 지리산의 견불동에서 전통장류업체를 하면서 사는 귀촌인이다. 대도시의 삶이 싫어서 내려온 류순영은 뱀사골 입구의 원천마을에 살면서 산야초와 새순을 따서 차를 덖는 일을 좋아한다. 군산이 고향인 송창해는 전주에서 아동요리와 음식문화해설을 하는 사람이다. 이..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7~8월에 외국노선의 퍼스트클래스에서 민어매운탕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외국여행을 할 기회가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여름철의 대표 보양식인 민어가 드디어 외국인들에게도 알려지는 모양이다. 민어는 民魚의 글자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고가의 귀한 생선이라 특별히..
어느 해 봄, 춘천에 사시는 큰 이모부께서 놀러오면서 우렁이를 한 바가지 잡아오신 적이 있었다. 손질해본 적이 없어서 좀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나는 제주도의 바닷가에서 잡은 보말을 삶아서 먹던 것과 비슷할 거라 여기고 대뜸 씻어 건져 솥에 넣고 삶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우렁이와 마주..
박과에 속하며 덩굴식물인 오이는 인도 북부가 원산지로 추정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1500년 전에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과학의 발달로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거의 1년 내내 수확이 가능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표적인 열매채소이기도 하다. ..
가을에 거둬들인 식재료들이 다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픈 서러움을 겪는 시절을 일러 보릿고개라 하였다. 그러나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라 무엇이든 과잉섭취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때가 되었다. 영양실조라는 말은 남의 나라 이야기에나 쓰는 단어가 되었고 이제는 ..
뭔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를 한 아이들을 향해 어른들이 야단을 치시는 말들 중에 ‘가지가지 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 까닭에서였는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에서 가지는 그다지 맛있는 채소는 아니었다. 놀러 나가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의 텃밭에서 쉽게 따먹었던 시원하고 달착지..
어부들은 구멍을 좋아하는 문어의 습성을 이용하여 밤이면 질그릇 단지를 바다 속에 넣어놓는다. 그리고 아침에 단지를 끌어올려 문어를 잡는다. 문어들은 그 안에서 생애 마지막 꿈을 꾸는 것이다.김영하 <빛의 제국> 중 나는 산촌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을 부산과 진해의 바닷가에서 보냈으므로 어..
횡성여성농업인센터에 교육을 다녀왔다. 강원도 춘천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그런지 긴 시간 운전을 하고 갔다 왔지만 바로 옆 동네를 다녀온 것처럼 별로 피곤한 줄 모르겠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싶은 마음에 아침 일찍 출발하여 익숙한 산세며 계곡 그리고 논밭에서 자라고 있는 작물들을 눈에 넣고 왔..
토마토의 계절이 왔다. 때마침 충북에 사는 지인이 흙살림의 꾸러미로 보내지는 토마토를 한 상자 보내주셨다. 충분히 익은 것을 따서 보냈는지 달고 맛나다. 늘 입이 마르다며 과일을 옆에 끼고 사시는 어머니가 나보다 더 좋아하신다. 해마다 마당에 몇 포기 심어 두고 오며가며 하나씩 따서 입에 넣는 재미..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 키울 때 자주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때마다 친정어머니가 만들어 두신 매실고를 먹였었다. 그래서 요즘도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매실고나 매실청을 만들고 기숙사 생활하는 딸아이에게 한 병씩 보낸다. 어미로서 할 일을 한다고 한 것이었지만 작년에 딸아이가 나에게 전한 이야기..